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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술 2장 - "연금술의 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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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리아
아리스토텔레스의 죽음으로 그리스 철학의 고전시대는 끝나고, 과학의 주도권은 아테네에서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로 옮겨지기 시작했다. 당시 사원은 위대한 연구소였는데, 이곳의 연구에 자극을 받아 과학이 개화하고, 그밖의 여러 요인과 결합해 화학은 급속히 진보했다. 알렉산드리아는 많은 문화가 교류한 장소였다. 그무렵까지 그리스 철학은 대단히 추상적인 경향을 지니고 있었는데, 몇 백 년에 걸쳐 고도로 발전해온 실제적인 오리엔트의 기술과 만나 오리엔트적 신비종교가 알렉산드리아에서 성행했다. 그결과 그리스 철학, 오리엔트의 기술, 오리엔트의 종교적 신비주의로부터 최초의 연금술이 탄생했다. 초기의 연금술사는 장인에 불과했으나 철학적 이론을 기초로 기술과정의 성질을 설명하려고 하는 철학자들에게 자극을 받았다. 그들은 철학자의 물질 상호 변환 사상에 영향을 받아 가난한 고객을 위해 만들었던 금 모조품이 진짜 금으로 바뀔지도 모른다고 믿었다. 그들은 금속을 변화시켜 겉보기에 금과 비슷한 것을 만드는 동안 조작과 시약의 조제를 통해 참된 화학을 익혔다. 알렉산드리아의 연금술사들은 화학장치를 대폭 개량하고 무기물질에 관한 많은 새로운 반응을 익혔다. 그러나 오리엔트의 종교로부터 연금술사상에 흘러 들어와 있던 신비사상이 알렉산드리아의 연금술에서 지배적 사상이 되고, 금의 완성은 인간 정신의 완성을 상징하는 데 불과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따라서 실험실에서의 실제적인 작업의 흥미는 쇠퇴해 화학상의 발견은 4~5세기에 비잔틴 제국에서 거의 종식되었다.
 
아라비아의 황금시대
이 시기에 초기 그리스도교의 종교논쟁으로 정교회에서 네스토리우스 교단이 분리되었는데, 네스토리우스교도는 소아시아로 쫓겨나 그곳에서 많은 중요한 학파를 확립하고 그리스 철학자들의 논법을 가르쳤다. 그들은 대부분의 그리스어 서적을 시리아어로 번역하여 서유럽이 암흑기에 있었을 때도 많은 귀중한 그리스 문헌을 보존할 수 있었다. 네스토리우스교도들은 또 신흥 아라비아 제국과 접촉해 바그다드의 지식인인 칼리프(마호메트의 후계자)의 장려로 그리스 저서들을 다시 아라비아어로 번역했다. 8~11세기에 많은 의사와 연금술사는 실제적인 실험실 작업으로 돌아갔다. 그들은 아리스토텔레스 학파의 자연법칙을 계승해 화학 변화와 아리스토텔레스의 4가지 속성을 조합시켜 원소들을 설명했으며, 이를 약간 수정해 아리스토텔레스의 원소가 제2의 대립물인 황과 수은을 형성한다고 가정했다. 당시에 황과 수은은 금속을 구성하는 물질이라고 생각했는데, 황과 수은은 물리적 물질이 아니라 토성(土性)과 연소성(황), 광택과 유동성(수은)의 속성을 의미했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 계통의 사상은 존재의 개념으로 바뀌고, 실체가 없는 '요소'는 유형물질에 존재하는 물리적 성질을 부여하게 되었다. 아비체나, 라지 등 아라비아의 의사와 화학자들은 가성 알칼리, 염화암모늄을 비롯해 많은 중요한 물질을 도입했다.
 
♣서유럽으로의 도입
11세기 이후 아라비아의 연금술은 이전의 그리스인의 연금술과 마찬가지로 실제적 성격을 잃기 시작했다. 한편 당시 서유럽 사람들은 일찍이 로마를 멸망으로 이끌었던 오랜 동안의 과학적 암흑기에서 깨어나기 시작했다. 그들에게는 아라비아 과학에 대한 강한 호기심이 있었다. 스페인과 시칠리아 섬에도 학교가 설립되어 고대 아라비아의 사본이 번역되었다. 그 대부분은 그리스어로부터 고대 시리아어를 거쳐온 것이었다. 그당시에 많은 연금술 사본을 비롯한 모든 종류의 과학 저작이 라틴어로 번역되었다. 이 저작들은 서유럽에서 열광적인 인기를 얻어 연금술의 실용화가 성행했다. 연금술은 중세를 통해 실용기술로 자리잡은 금속 공작기술을 기반으로 이루어졌다. 장인들은 실제적인 관찰에 대한 이론적 근거를 밝혀냈지만 그당시에도 금속의 조성으로 황-수은설을 취하고 있었다. 게베르가 쓴 책에는 연금술에 대한 새로운 지침이 요약되어 있는데, 1310년경의 저작은 당시 실험실 작업이 기술적으로 상당히 진보했음을 보여준다. 거기에는 금속 분석실험 방법과 시약 조제, 정제 방법 등의 내용이 아주 정확히 기술되어 있다. 당시에는 또한 알코올의 증류 등 증류기술이 상당히 진보해 있었다.
 
♣실용적 연금술의 지배
르네상스 초기에 과학이 부흥함으로써 연금술도 한층 발전했다. 16세기에는 H. 브런츠윅의 증류에 관한 저서와 V. 비링구초, G. 아그리콜라, L. 에커의 채광 연금술에 관한 명저들이 나왔다. 이 출판물에는 새로운 금속과 그 화합물들이 기재되어 있다. 의학에 있어서는 P. A. 파라켈수스가 화학요법을 이용할 것을 강력히 주장했다. 그는 의학에 화학요법을 도입하는 시도로 의약화학 학교를 설립해 약학의 선구자가 되었다. 이미 방대해진 새 지식은 아리스토텔레스 학설의 틀 속에서는 적합하지 않게 되어 완전히 새로운 이론이 요구되었다. 당시 파라켈수스는 금속 조성에 관한 황-수은설을 수정하고 금속의 제3성분으로서 소금을 덧붙였다. 그는 이것을 금속의 안정성[土性]을 설명하는 데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황은 단순히 연소성의 요소에 불과하게 되었고, 수은은 여전히 금속성 광택과 유동성을 부여하는 것이었다. 파라켈수스의 이 주장은 ' 3원소설'로 알려지게 되었다.

[참조]한국 위키백과
[락지 기획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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