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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검 4장 - 글라디우스 (Gladius) - ①
AD 樂지운영자  
"사람을 죽이는데는 2인치면 충분하다." - Vegetius, De Re Militari
Gladius, 복수형으로는 gladii. 로마에서 애용된 한손검이다.

♣형태
양날의 비교적 짧은 한손검으로, 찌르기에 적합한 포인트를 지니고 있다. 그립은 원통형에 손가락 무늬로 굴곡이 들어있으며, 가드 부분은 직사각형이고 크기가 그다지 크지 않기 때문에 중세 후기의 도검처럼 크로스가드를 사용하기는 어렵다. 파멀은 상당히 큰 편에 둥글거나 약간 찌그러진 구형이 보통. 검신에는 소유자의 이름을 새겨서 소유자들이 검을 많이 아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로마 공화정 시대는 철기시대로 철 산출이 꽤 괜찮았고 철 다루는 기술도 발전했기 때문에, 글라디우스 역시 꽤 괜찮은 품질의 도검이었다. 제조처에 따라서 그냥 통짜 강철 단조를 하는 경우도 있고 패턴웰딩으로 만들기도 한 것으로 보인다. 퇴역 군인이 퇴직금 모아서 군단에 납품하는 도검의 중계업을 하는 경우도 있을 정도로 제조와 납품이 꾸준히 이루어진 것 같다.
 
 
보통 도검은 왼편에 차지만 글라디우스는 오른쪽에 차는게 기본인데, 왼손으로 방패를 쥐고 오른손으로 칼을 뺄 때 걸리적거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다만 기록에 따라 우측이 아니라 좌측에 찬다고 쓴 것도 간혹 보이는데, 군단 제식이 달랐을 가능성이 있진 않을까. 찰때는 벨트를 쓰기도 하고 어깨띠(baldric)을 쓰기도 한다. 백부장은 군단병과 구분되기 위해 군단병들과 정 반대편에 차는 것이 보통이었다고.

어원
일단글라디우스라는 단어 자체는 로마 시대에는 그냥 검을 뜻하는 보편적인 단어다. 
공화정 시대의 사가들은 글라디우스를 특정 형태의 도검을 뜻할때 쓰는 경향이 강한 편이었으나, 항상 그렇지는 않았다. 그래서 같은 도검을 두고 semispathae라거나 spathae, ensis 등으로 표기되는 일도 있었다. 또한 pugio라고 불러야 할 단검을 일컬을때도글라디우스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다. 
AD 1세기 로마의 역사가 퀸투스쿠르티우스루푸스가 쓴 알렉산더대왕 전기에서도 글라디우스라는 표현이 등장할 정도다. 대개 긴 것을 스파타, 짧은 것을 글라디우스라고 하지만, 글라디우스가 단검과 장검 사이 크기의 소검을 칭하는 절대적인 정의이자 규범은 아니다. 글라디우스 자체는 그냥 칼을 뜻하는 말일 뿐이라는 점을 다시 강조한다.
 
 
gladius라는 단어의 어원은 고대 인도-유러피안 언어에서 매끈하다는 것을 뜻하는 어근에서 나오는데, 왜 매끈하다는 뜻이냐면 도검을 만들고 매끈하게 갈아서 광택을 내는 처리 과정을 말하기 때문이다. 
프로토-게르마닉 계열의 glaðo-, 올드-하이 게르만(OHG)에서 glat, 독일어의 glatt, 노스(북구 스칸디나비아) 어의 glaðr, 불가리아 고어의 гладък (gladak) 같은 단어들이 모두 매끈하다라는 뜻이다.
글라디우스라는 단어에서 글라디우스로 싸우는 사람을 뜻하는 gladiator(검투사), 잎사귀가 칼처럼 길쭉하게 생겼기 때문에 작은 글라디우스라는 뜻에서 gladiolus(글라디올러스 꽃) 같은 단어가 생겨나게 된다.
조금 다른 주장을 들어보자면, 켈트어 언어학자인 율리우스포코니는글라디우스라는 단어는 갈리아말kladyos에서 기원했으며, 웨일즈어cleddyf와 브르타뉴말kleze, 아일랜드 고어 claideb (클레이모어와 연관되는) 모두 칼이라는 의미로 같은 어원이라고 주장한다. 이 단어들은 kelad- 를 어근으로 하고 있으며, 라틴어에서 상처를 의미하는 clādēs와 같은 의미라는 의견이다.

글라디우스의 기원
완전 무장한 로마의 병사는 스큐툼(방패), 필라(투창) 몇 자루, 글라디우스(검), 푸지오(단검), 플럼바타(투척 다트) 몇 개를 갖추고 있다 접전이 벌어지기 전에 투창을 던져서 적진이나 기병을 말랑하게 만들고, 단단하게 방패로 몸을 보호하면서 방패 뒤에서 글라디우스로 찌르는 전술을 사용한다고 한다는데, 사실 건국 이래 로마는 몇 번의 군제 개혁이 일어나게 된다. 그래서 글라디우스의 형태와 시대를 짐작하려면 로마 군제의 흐름을 우선 짚어봐야 한다.
제일 먼저 로마 초창기 왕국 시절, BC 6세기 경세르비우스툴리우스 왕이 편성한 군대가 후대 로마 군단의 모태라고 일컬어진다. 이 시절 로마, 라틴인의 군대는 각자 재산에 따라 무장을 장만하고 무장의 부유함에 따라 다섯 계급으로 나누어 편성하는 부족적인 성향이 강했고, 그들이 갖춘 무장은 사실상 그리스 호플리테스의 것을 그대로 베낀 것이었다.
 
 
두번째로 변화한 때가 BC 4세기 경마르쿠스카밀루스에 의한 것인데 이 시기 그리스식호플론 방패는 사라지고 라틴식스큐툼이 주로 사용된다. 하지만 투창과 창병 중심의 편제였고 평원에서 회전 중심으로 싸웠기 때문에 여전히 그리스식을빼다박은듯한 모양새였다. 부대는 무장의 부유함에 따라 편성하는 것이 아니라 나이와 숙련도에 따라 편성하기 때문에 좀 더 전문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시기 도검 역시 시포스(Xiphos) 같은 호플리테스 타입의 잎사귀형 칼날의 검이나, 코피스(kopis) 같은 것을 사용했다.
BC 2세기에 들어서 카밀루스 식을 확 개편하는 변화가 일어난다. 부대 편제에서 무장이 부실한 잡병 수준이던 accensi와 rorarii를 없애고 하스타티(hastati), 프린키페스(principes), 트리아리(triarii) 편성으로 개편, 팰랭스를 유연하게 변형시킨 로마식쓰리라인 시스템이 사용된다. 우리가 로마 군단이라고 부르는 것이 바로 이 시기부터 랄 수 있다. 그리스나 이탈리아식 도검은 우리가 잘 아는 히스파니아 검, 글라디우스로 변화한다. 특히 나이가 많은 베테랑 병사로 편성된 트리아리는부 무장으로 방패와 글라디우스를 소지했다.

BC 2세기 말 가이우스마리우스가 모든 이탈리아인에게 로마 시민권을 부여하고 군단을 재편성하는데, 세 편성이던 군단을 프린키페스 하나로 통합, 레기온-코호트-센츄리 편성이 정규화된다. 그리고 별도 분류되던 투창병을 삭제하고 모든 보병이 투창을 소지하게 되며, 갑옷 역시 각자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지급품으로 나오고(물론 급여에서 갑옷 값을 까지만), 대량 양산된 몬테포르티노 투구(Montefortino helmet)와 사슬갑옷 로리카 하마타도 사용된다.
그리고 로마 공화정이 끝나고 로마 제국 시대가 열리게 되고 아우구스투스 시대 로마 군단병은 정치 경제적인 이유로 그 부피를 줄이게 된다. 이 시기부터 로마 군단병의 외형이 제법 바뀌어서 우리가 보편적으로 떠올리는 로마 군단병 - 붉은 튜닉, 눈썹 달린 투구, 띠 형태 판금갑옷, 글라디우스와 투창, 각진 방패 - 의 모양새를 갖추는데, 기존에 사용하던 몬테포르티노 투구도 제법 남아있었으나 목 방어를 강화하고 눈썹을 달은 쿨루스 투구(Coolus helmet)의 사용이 늘어나다가 로마군단병의 투구 하면 딱 떠올리는 제국 제식 투구(Imperial helmet)가 등장한다. 또한 로마군단병의 갑옷 하면 대표적으로 떠올리는 띠 모양의 판갑을 엮어 만든 로리카세그먼타타(loricasegmentata)가 바로 AD 1세기 초기에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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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세기 부터의 제국 말기 시절의 군단병은 많은 변화를 보여서 레기온의 숫자는 늘었으나 하나의 레기온의 구성원 수는 줄어드는 형태를 보인다. 5세기 초의 NotitiaDignitatum을 보면 구식의 레기온 개념은 남아있으나 그 숫자가 이전의 5천이 아닌 1천에서 1.2천 내외이며, 포병이나 기병이 반드시 붙어있을 필요도 없어졌다고 기록하고 있다. 정확한 편제는 불명이지만 2개 센츄리가 통합한 ordines 여섯 개로 구성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보병들은 서아시아에서 온 릿지형 투구를 채용하고 흉갑이 없어지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는 기병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보병에게 값비싼 장비를 투자하기 힘들어서일 것이다. 방패는 사각형이 아니라 둥글거나 타원형이 된다. 검은 스파타 형태의 긴 것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AD 2세기를 넘어서면 군단병 보병도 스파타를 사용하기 시작한다.
우리가글라디우스라고 하는 것은 로마 제국 군단병의 검을 일컬는 경우가 보통이다. 그런데 로마군의 장비가 많이 변화해온 만큼 글라디우스도 시대와 장소에 따라 변화해왔다.
 
 
글라디우스의 기원으로 가장 흔히 알려져있는 것이 GladiusHispaniensis, 히스파니아 검이라는 말이다. 히스파니아는 에스파냐를 이르는 로마 말. 이것에 근거해서, 히스파니아 원정에서 켈티베리아인들이나 기타 부족들과의 접촉을 통해 획득, 도입했다는 것이 세간의 상식처럼 알려져있으며, 보편론으로서는 이것이 옳다.하지만히스파니아 검이 로마 최초의 글라디우스는 아니다. 글라디우스가 포에니 전쟁 이전부터 로마에서 사용되었다는 증거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로마 역사가 티투스리비우스가 쓴 만리우스토르쿠아투스에 대한 일화를 보자. BC 361년, 갈리아 원정 중 로마군과갈리아군은 강 맞은 편에서 다리 하나를 놓고 공방을 벌이고 있었다. 다리가 하나 뿐이었기 때문에 이 다리를 건너기 위해 다리 위에서 일대일 전투가 벌어지는 상황이었다. 이때 만리우스가 나아가서 갈리아 인과 싸웠는데, 그는 갈리아 인의 방패 아래로 칼을 두번찔러넣어 승리를 거두고 그 갈리아인이 목에 걸고 있던 목걸이(Torc)를 벗겨서 자기 목에 걸었다. 그래서 그의 이름에 토르쿠아투스를 쓰게 된다. 만리우스가 이때 사용한 검이 GladiusHispanus라고 한다.
이 전투는 포에니 전쟁(264-146 BC)보다 한참 이전인 갈리아 전쟁(366-341 BC) 중이었으므로 포에니 전쟁에서 글라디우스를 얻는다는 말은 틀린 것이다.

또한 리비우스의 기록을 보면, BC 308년 캄파니아(Campania)인들이 삼늄(Samnium)인들과의 전쟁에서 승리했고, 그때 잡아온 새로운 검투사인 삼늄인(Samnite)들에게 그들이 사용하던 무기를 쥐어주었다고 나온다. 검투라는 것은 죽은 전사들에게 희생제의를 올리는 관점에서 전쟁포로를 싸우게 하는 것에서 시작해서, 전쟁포로나 검투노예에게 적들이 쓰던 무기를 쥐어주어 기존의 병종을 재현하여 싸우게 하는 것으로 원래 전쟁에 나가지 않은 사람들에게 전쟁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일종의 엔터테인먼트 성격을 띄게 된다. 그래서 글라디에이터의 병종에 Galli, Samnites, Thraces같은게 들어가 있는 것이다. 
삼늄인들이 사용하던 짧은 검도 글라디우스다. 로마는 BC 264년 처음으로 검투 경기를 개최했는데, 리비우스의 기록을 그대로 믿는다면 로마에서 검투경기가 처음 열릴때부터글라디에이터라는 단어를 썼을 가능성이 있다.
이런 점으로 볼때, 글라디우스를군단병이 널리 채용하게 된 때는 BC 3~2세기 경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히스파니아 검 자체는 히스파니아 원정 이전부터 로마에서도 볼 수 있고 종종 사용된 도검이라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말하지만 글라디우스라는 단어 자체는 원래 검을 가리키는 중립적인 용어일 따름이다.

[출처] Martial Arts of Renaissance Europe, Sydney Ang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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