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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 5장 - "검의 형제기사단(Schwertbrüderorden)"
AD 樂지운영자  
(라)Fratres Militiae Christi (영)Order of the Brothers of the Sword. 별칭은 검기사단, 리보니아 기사단.
1202~37년 리보니아(지금의 라트비아와 에스토니아의 대부분 지역)를 정복해 그리스도교를 전파한 십자군 기사단.

독일인 선교사들이 이 지역에 들어간 것은 뤼베크와 브레멘에서 온 독일 상인들이 드비나 강 어귀 주변지역에서 상권(商權)을 장악한(12세기 중반) 뒤였다. 그뒤 1202년 리보니아 제3대 주교 알브레히트 폰 북스회프덴이 이 지역에 대한 교회의 기득권을 지키고 이교도 원주민들을 그리스도교로 강제 개종시키기 위해 교황의 승인을 받아 상설 군사기구로 창설한 것이 검의 형제기사단이다.
1204년 교황에게서 축성(祝聖)을 받은 기사단은 성전기사단(聖殿騎士團)의 규율을 채택했는데, 이에 따르면 기사들은(이들의 흰 망토에 붉은 십자가와 검이 수놓아졌기 때문에 검의 기사들이라 불렀음) 귀족이어야 했고 순종·가난·금욕을 맹세해야 했다. 이들은 각 지구(district)의 성(城)에 살았으며, 자체 평의회(評議會)와, 기사단장이 뽑은 군사책임자가 각 성을 다스렸다. 기사총회에서는 종신직인 기사단장과 그밖에 1년마다 다른 직원들도 선출하였다. 기사단원 가운데에는 병사와 장인(匠人), 성직자들도 있었다.
1206년경 이 기사단은 리보니아 지역의 드비나 강과 가우야 강 어귀 주변에 살던 핀우고르족(族)을 강력하게 지배했으며 1217년경에는 드비나 강 북쪽에 있던 이웃 라트비아 부족들과 남부 에스토니아를 정복했다. 그후 드비나 강 남쪽을 공격했으나 그곳에 살던 쿠르인과 세미갈리아인들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혔다. 1236년 9월 기사단이 리투아니아의 사모기티아를 습격해 많은 전리품을 가지고 세미갈리아를 지나 돌아오던 중 세미갈리아인과 사모기티아인의 연합세력에게 치명적인 공격을 받아(사울레 전투) 기사단장 볼퀸이 죽고 기사단의 군사력은 사실상 붕괴했다. 기사단은 이교도와 개종자를 가리지 않고 무자비한 전술을 사용한 것 때문에 신성 로마 황제와 교황의 질책을 그전부터 받았던데다가 이때에 와서는 교회를 위해 사람들을 개종시키는 것보다는 자신들의 영지 지배를 확립하는 데 더욱 열중했기 때문에 교황은 기사단을 해체해 튜튼 기사단의 한 지부로 재조직하도록 명령했다(1237).
그뒤부터 프로이센에 주요기반을 두고 있던 튜튼 기사단의 단장이 리보니아의 관구장(Landmeister)을 임명하게 되었다. 검의 형제기사단은 리보니아 정복을 계속했고 1525년부터는 다시 독립 기사단이 되어 이 지역을 지배했으나, 리보니아가 분할되면서 1561년 해체되었다.

[참조]한국 브리태니커 온라인
[락지 기획팀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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