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헐리우드 영화를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소련 첩보원과 신경전을 벌이던 냉전시대도 끝났고, 오사마빈라덴도 잡혔으며 이라크전도 종전됐는데, 미국은 이제 어떤 절대 악과 싸우려나. 북한…?
복잡할 것도 고민할 것도 없는 액션 영화나 첩보 영화를 보면 살인과 전쟁에 미쳐있는 ‘광’적인 적들이 등장하는데 사실 이러한 경우는 ‘쟤네 왜 싸우는데?’와 같이 ‘왜’에 대한 의문을 깊게 가질 필요가 없는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와 같은 영화나 플롯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간혹 단조로운 것을 보며 느끼는 즐거움을 필요로 할 때가 있으므로. 사실 그 단조로운 것을 보며 느끼는 즐거움이란 것은 결국 대체로 비주얼과 액티브한 영상으로 누릴 수 있는 효과임을 명심하자.
비주얼과 영상으로 승부할 수 없는 소설을 쓴다면 방해자의 입장에 조금 더 힘을 실어주자. 나름 일리가 있고 논리가 있는 소신을 위해 싸우고 투쟁하는 방해자와 맞서는 주인공은 더욱 깊은 곤경에 처하게 된다. 주인공에게 방해자와 맞설 때마다 방해자를 쉽게 쓰러뜨릴 수 없는 장애와 딜레마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이것은 앞 서 언급했던, 주인공에게 시련이 깊을수록 그 극복의 이야기는 더욱 효과적이면서 드라마틱하게 진행될 수 있다는 내용과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작가는 주인공의 편이 되어선 안 된다. 주인공에 애정이 없어 걸핏하면 주인공이나 등장인물을 쳐 죽이는 결말을 만들어서도 안 되겠지만, 주인공은 성자고 방해자는 악당이라는 설정은 너무나 훤하고 뻔해 벌써부터 하품이 나올 뿐이다.
논리와 논리, 가치와 가치, 선과 선이 싸우는 것, 우리는 이러한 이야기를 궁금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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