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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검 3장 - 대한민국의 검 사인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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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의장용 보검(寶劍)의 일종 : 제원(길이 : 75.5cm)

♣발달과정/역사
동양에서는 천(天)에 대한 사상이 강했던 관계로 왕이 하늘의 아들인 천자로 표현되었다. 따라서 하늘의 아들에게 거역하는 자를 징벌한다는 의미 때문에 형벌을 의미하는 부월(斧鉞)을 정벌군 장수에게 줌으로써 장수의 권위를 확인시켜 주었다. 이에 수면문(獸面文)이나 성좌(星座) 등이 부월에 표현되었다. 왕으로부터 병권을 상징하는 부월을 받은 장수는 자신의 권위를 나타내는 장검을 소지하게 된다.
통상 이 장검은 상징물이었기 때문에 시종이 별도로 들고 지휘자의 뒤를 따랐다. 그리하여 인명을 좌우하는 지휘자의 통솔의 의미와 승리를 상징하는 용맹의 의미로 인해 칠성검이나 인검이 등장하게 되었다. 이러한 권위용의 검 외에도 소유자의 무운을 비는 의미로 싯귀를 새기고 실존하지 않은 동물을 그려 새겨 넣거나 화문(花文)을 그려 넣어 상(祥)스러운 무기로 만들려고 하였다.
 

인검은 간지의 인(寅 : 호랑이, 예로부터 호랑이는 무를 상징)자 들어가는 때에 제작된 칼로 무(武)의 기운이 강하여 부월이 상징하는 바를 구현한다고 생각하였다. 인년(寅年), 인월(寅月), 인일(寅日), 인시(寅時) 이 네가지가 모든 적용되는 시기에 제작된 칼을 사인검(四寅劍), 세가지가 겹칠 때 제작된 칼을 삼인검(三寅劍), 두가지가 겹칠 때 제작된 칼을 이인검(二寅劍)이라고 한다.
참고로 『성종실록』 권90, 성종 9년 3월 계유조에는 “창원군(昌原君)이 말하기를 신은 본래 고읍지(古邑之)라고 일컫는 여인을 알지도 못하며, 전후에도 여인을 살해한 일이 없습니다. 집안에 다만 삼인검(三寅劒)과 삼진검(三辰劒)이 각각 한 자루씩 있을 뿐이고, 또 환도(環刀)는 없습니다.”라고 나와있다. 여기서 삼인검과 삼진검은 동일하게 하나의 의장용 군기(軍器)였음이 분명하다. 또 유성룡의 『징비록(懲毖錄)』에는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선조가 출정하는 신립을 불러 보검(寶劍)을 하사하고 이일이하 제 군사들이 명을 거역할 때에는 이 검으로 다스리라고 하였다. 이 검 역시 인검과 유사한 의미를 지닌 검일 것이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이 검은 육군박물관과 고려대박물관 소장의 사인검을 복제한 것으로 “사인검(四寅劒)”이라는 명문과 북두칠성(北斗七星) 문양이 상감(象嵌)되어 있다.
 
♣사인검의 전설
해란강은 간도 용정 부근을 둘러싸고 있는 강으로 예로부터 고구려가 망한후 고구려의 유민들은 간도에 정착해서 곡식을 키우며 살았다. 유복하지는 않았지만 나름 살만 했는데 어느날 부터 '궁기'라는 날개달린 요괴가 수하 요괴들을 거느리며 나타나 마을을 점령하고 사람들을 헤쳤다.
사람들도 대항을 했으나 요괴들의 힘에 무릎을 꿇었고 궁기는 자기들을 모시고 매년마다 처녀를 바치라고 했다. 이때부터 간도는 요괴들의 점령지가 되었다.한편 이마을에 어귀에는 "해"와 "란"이라는 어린 오누이가 살았다.
오누이의 아버지는 궁기에게 대항을 하다 죽었고 해도 죽을 뻔 했지만 란이 사정을 해서 궁기는 해를 강으로 집어 던졌다. 해는 강을 타고 가다가 가까스로 강에 있는 바위를 붙들어서 강 어귀로 올라 왔다.이런 해를 지나가던 한 스님이 구해 주었고 해는 스님에게 사정을 하고 스님이 알고 있던 무승에게 무술을 배웠다.
그렇게 무술을 배워 5년이 지나자 해는 복수를 하러 가기를 원했다. 그러나 무승은 해에게 거대한 쇠낙대를 주면서 이걸 마음대로 다루면 하산을 할 수 있다고 했다. 해는 다시 이를 악물고 2녀간 수련하여 쇠막대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었다.
그러자 무승은 긴 검을 해에게 건내 준다. 이 검이 바로 사인검 이었다.그리고 간도 마을로 향했다.
마을은 7년동안 요괴들 때문에 폐허가 되어 있었다.해는 일단 마을 사람들을 찾았는데 자신의 누이 란이 마을 사람들을 보살피고 있었다. 내일 아침이 되면 란은 궁기에게 팔려갈 텐데 란이 궁기를 방심하게 하면 해가 궁기를 공격 하기로 한다.
다음날 란은 궁기가 사는 궁으로 끌려 갔고 해는 조용히 그뒤를 쫓아 갔다. 궁기의 성은 잡혀온 아가씨들이 요괴들에게 수난을 당하고 있었고 란은 정성껏 궁기를 모셨다.
방심한 궁기가 술에 취하자 란은 해를 불렀다. 그러나 평소 나쁜 마음을 먹고 있던 마을 사람이 해의 침입을 알린뒤였다. 곧 해와 란은 요괴들에게 포위되고 말았다. 하지만 해는 겁을 먹기는 커녕 사인검을 뽑아 요괴들을 물리쳤다.
마를 베는 사인검에 베어진 요괴들은 그대로 한줌이 재가 되서 흩어졌다. 요괴들도 공격을 했으나 해의 검술과 사인검에서 나오는 강력한 순양의 기에 요괴들은 하나 둘씩 소멸을 했다. 수하들이 죽어 나가자 궁기가 날개를 펼치며 해에게 달려 들며 입에서 불을 뿜었다. 그러나 사인검의 주술적 힘엔 궁기의 요력은 전혀 통하지 않았다.
그러자 궁기는 거대한 도를 휘두르며 해를 공격 했고 해 역시 사인검을 휘두르며 궁기를 격돌 했다. 둘은 용호상박으로 검을 휘둘렀는데 사인검의 마를 물리치는 힘때문에 궁기는 점차 힘이 빠졌다.
결국 궁기는 자신의 팔을 희생시키고는 그대로 날라 올라 도망을 가려고 했다. 그 순간 란은 잡혀온 여성들을 설득하여 뜨거운 잿물을 가져와 성의 높은 곳에 있었다.
그리고 궁기가 날아오르자 란은 그쪽으로 뜨거운 잿물을 퍼부었고 궁기는 비명을 지르며 추락 했다.
그러자 해가 달려와 사인검을 휘둘러 궁기의 몸을 두동강 냈다. 마을은 해방 되었고 사람들은 해와 란의 공적을 길이 알리기 위해강이름을 해란강이라고 불렀다. 여기서 나오는 궁기는 중국의 요괴로 중국 최초의 황제인 헌원에게 쫓겨난 제후 일족을 상징하는 요괴 이다.
이후에도 왕에게 쫓겨난 관리 일족을 궁기라고 불렀는데 이점을 보아 해란강 전설은 중국에서 쫓겨난 제후들이 간도 부근에서 땡깡을 부리다 유민들을 이끈 해와 란의 활약에 죽은 걸 상징하는 것 같다.
여기서 나오는 사인검은 아마 해가 점령한 침입자를 물리치기 위해 노력하다가 어떠한 연유로 인해 입수한 검일 것이다.
실제 사인검이 이렇게 엄청난 힘을 가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간도의 유민들을 하나로 뭉치게 할 상징 혹은 영엄한 힘을 내게 하는 신검 역할을 했을 것으로 사료 된다.

[출처] 락지 기획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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