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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 4장 - "마녀사냥"
AD 樂지운영자  
16~17세기에 걸쳐 유럽에서 벌어진 가톨릭 계의 최악의 학살인 동시에 씻을수 없는 병크. 마녀사냥으로 총 6만명이 죽었다. 가톨릭만이 아니라 개신교 계열에서도 마녀사냥은 존재했다. 하지만 고문과 사형 그리고 재산몰수로 이어지는 일종의 산업이 된 것은 프로테스탄트 운동으로 인해 실추되고 있던 교황청에서 이전에는 금지하던 이것을 승인한 후 부터이다.
 
악마와 계약해서 마법을 사용한 마녀를 재판에 넘겨서 처형하는 것. 주로 화형당하는 이미지로 널리 알려졌지만 화형만이 아니라 목을 매달거나, 물에 빠트려 죽이는 등 온갖 방법으로 죽였다.
서양 역사에서 있었던 통칭 '마녀재판'은 사실 마녀재판이란 번역이 적절치 않으며, '특별재판'이 적절하다. 흔히 이단심판, 마녀재판으로 번역하는 라틴어 inquisitio는 교회법으로 어떤 특정한 사항이 발생했을 때 임시로 개설하는 '비상설 특별재판'이기 때문. 즉 inquisitio는 꼭 마녀나 이단만을 다루던 재판이 아니다. 하지만 마녀재판이란 단어가 워낙 한국어 언중에게 깊이 들어왔기 때문에 이 문서에서도 그대로 마녀재판이라는 단어를 쓰도록 한다.
 
마녀를 찾아내는 데에는 말레우스 말레피카룸이란 책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도미니코 수도회 소속 사제 두 명이 합동으로 쓴 책. 우리말로 '마녀의 망치' 혹은 '마녀의 추'라고 번역한다. 그 이전까지 마녀에 대해 떠돌던 온갖 전설과 민간신앙을 정리하고 집대성한 매뉴얼적인 책이다. 이 책을 비록 가톨릭 수도사들이 썼지만, 그 이전까지 전해오던 모든 이미지를 종합한 것이기 때문에 개신교권에서도 참고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자기들이 보기에도 친숙한 이야기들만 나오니까. 반대로 영국에서는 그 영향력이 크지 않았다. 영국은 섬나라라 대륙의 전통을 집대성한 말레우스 말레피카룸이 이질적으로 느껴졌던 것이다.
 
일단 명목은 마녀사냥이지만 실제 마녀사냥에 희생당한 사람들은 권력의 희생자들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특히 돈 많은 과부들이 주로 타겟이 되었는데, 당시 여성의 지위도 별 볼일 없었고, 남편이 없으니 '악마와 간통했다'라는 소문에 취약한데다가, 무엇보다도 당시 독일법 상 마녀재판으로 몰수된 재산의 일부는 마녀로 누군가를 지목한 사람의 몫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덤으로 '아름다운' 과부는 같은 마을의 여성들이 질투로 마녀로 신고했다고. 또한 이교도였던 개신교 신자들도 상당수가 희생되었다. 하지만 개신교 국가에서도 마녀사냥은 많이 이뤄졌다고 한다. 개신교 신자들이 이주한 미국의 경우에도 세일럼에서 대대적으로 일어난 적 있다. 이 때 이 재판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 유명한 작가 너새니얼 호손의 조상이었는데, 그 사실을 알게 된 호손은 자기 성을 Hathorne에서 Hawthorn으로 바꿔버렸다고 한다.
 
세일럼 재판은 당시에도 말이 많았는데 완전 무죄는 거의 2000년대에 되서야 이루어졌다... 마릴린 먼로의 남편 중 하나인아서 밀러가 이 사건을 걸작 희곡 크루서블로 남겼고 영화화도 되었다. 아서밀러는 매카시즘의 희생양이었기 때문에 무엇을 풍자했는지는 상상 가능한 일이다.
또한 마녀사냥에서 지목된 사람은 재판과정에서 나오는 지불금을 자신의 돈으로 내야했으며, 자신이 고문당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인건비등을 전부 자신이 내야 했다. 완전히 자기가 돈 내고 죽는 것. 거기다가 마녀사냥을 하고나면 항상 축제가 열렸다. 이 축제비용 역시 마녀로 지목된 사람의 재산으로 이루어졌다. 이 축제가 상당히 비용이 컸던지 나중에 마녀사냥을 안하는 것이 된 계기로 보기도 한다.
유명한 천문학자이자 왕실의 정식 마법사 케플러의 모친도 마녀로 몰렸다.사형까지는 안 가고 어찌저찌 풀려났는데 후유증으로 사망한다. 막상 케플러는 마녀 사냥을 아주 지지하는 사람이었다.
 
참고로 잔 다르크는 희생자가 아니다. 마녀로 기소되기는 했지만, 정확하게 말해서, 잔 다르크는 마녀사냥이라기보다는 이단 심문의 희생자로, 잉글랜드와 프랑스, 교황청의 이해관계가 합일되면서 희생된 케이스다. 잉글랜드측에서는 백년전쟁 말기의 잉글랜드군을 무찌른 잔 다르크를 제거하기를 원했고, 프랑스는 국왕보다 인기가 높아지는 잔 다르크가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이에 잉글랜드는 부르고뉴파의 도움으로 잔 다르크의 신병을 양도받았고, 프랑스 국왕은 잉글랜드로부터 적절한 뒷돈을 받으면서 그것을 묵인했다. 교황청은 이미 짜여진 각본대로 잔 다르크의 이단혐의를 입증했으며, 이를 문서화 시킨 뒤에 잉글랜드 국왕에게 넘겨버렸다. 잔 다르크가 서명한 자백서에는 자신은 자신의 이단행위를 회개하며 다시는 정통된 신앙에 도전하지 않겠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으며 동시에 이와 같은 일이 또 발생 시 어떤 벌도 달게 받겠다고 하였다. 이 때 문맹이었던 잔 다르크는 자신이 어떤 문서에 서명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하지만 뒤에 잉글랜드에서 다시 한 번 잔 다르크를 마녀로 기소하면서 어쩔 수 없이 잔 다르크는 화형대로 올라갔다.
 
흔히 중세시대에 가장 많이 벌어졌을 것으로 여겨지지만 실제 가장 극심하게 마녀사냥이 벌어진 시대는 근대로서 대표적으로 30년 전쟁 기간 독일에서 엄청난 숫자의 사람들이 죽어나갔다. 애초에 마녀사냥이 벌어진 원인이 가톨릭의 권위가 약해지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8] 그전까지 (공식적으로)금지해왔던 마녀사냥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면서부터이다. 그리고 한번 몰아치기 시작한 광풍이 그렇게 쉽게 가라 앉을리가 있나 결국 근대에 정점을 찍은뒤 가라앉기 시작했다.
중요한 것은 12세기 이전의 마녀재판과 12세기 이후의 마녀재판을 비교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유는 12세기에 로마법에 대한 연구가 다시 시작되면서 그 전에 있었던 게르만족 풍습에 의한 살리카법전의 사용빈도가 적어지고 새로운 로마법에 기초한 법전 체계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12세기 이전에는 게르만족 풍습에 의해서 피해자가 있어야만 고소가 가능했었다. 즉 마녀에게 피해를 받은 사람이 있어야만 마녀를 고소 가능했던 것이다. 그에 비하여 12세기 이후에는 피해자의 신고 없이도 마녀의 고소 색출이 가능했다. 소위 황제시해음모 이론에 따른 것인데, 황제를 시해하려는 음모만으로도 반역죄에 해당하며 이는 사형으로 다스린다라는 로마법 구절을 인용하여 누군가의 신고 없이도 바로 재판이 가능하게 되었다. 근데 사실 이 로마법도 고대에는 그딴 식으로 해석 안 했다. 그렇게 해석 했어도 아무 때나 들먹이진 않았다.
 
사실 중세말부터 시작된 교회영향력의 불안으로 인해 심화된 것으로서 구교, 신교 갈등으로 절정에 올랐는데, 종교갈등이 없었던 이탈리아, 스페인 등지에서는 거의 마녀사냥이 없었고, 있어도 태형 정도의 처벌에 그쳤다. 단, 스페인은 유대인 탄압이 있었다. 이탈리아에서 있었던 한 마녀재판의 경우, 주술행위를 한 죄로 농부를 체포하고 훈방하고 체포하고 훈방하고를 거듭하다 수십 년 만에 최종적인 사형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독일의 경우, 마녀의 재산을 가지지 못하게 했더니 신고율이 급감했다는 기록이 있다. 즉, 지역사회의 갈등이나 재산 등의 문제를 종교적인 명분을 빌려 처리하기도 했다는 것. 원래 마녀재판은 지역 공동체의 불안케 하는 원인을 색출해서 진정케 하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마녀재판이 너무 심해지면서 도리어 지역 공동체가 극도로 분열, 나중에는 마녀재판 그 자체가 악마의 농간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가 되기도 했다. 미국 세일럼 재판이 그 대표적인 예. 이 정도쯤 되면 이단 심판관들에게 마을 사람들이 공공연히 적대감을 보일 정도였다.
독일은 마녀사냥이 가장 심한 곳이었는데, 그마저도 지역마다 서로 대단히 달랐다. 해당 지역을 통치하는 권력자의 성향에 따라 강하게 영향 받은 듯하다. 그 때문에 마녀사냥을 연구하는 서양사 학자들은 일괄적으로 설명하기가 어려워서 연구에 애로사항이 많다.
영국의 경우 알려진 것과는 달리 마녀사냥은 적은 편이였으며, 처형당한 숫자는 지나치게 과장된 것일 뿐 실제로는 마녀로 고발되어도 무죄로 풀려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독일과는 반대로 마녀를 처형시키는 것이 죽인 마녀에게서 압수한 것보다 돈이 더 드는데다가 마녀 사냥이 미신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혹은 한명 잡아다가 태웠는데 마을 하나가 통째로 날아간 사건 때문일 수도 있고, 또 독일 등 다른 나라와는 달리 영국은 마녀를 사형시킬 때 화형이 아닌 교수형에 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한 가지 재미난 점은, 이러한 마녀사냥은 도시처럼 번화한 곳보다 시골에서 더 잔인하게 시행된 경우가 많았다. 도시에서는 고문을 하더라도 법대로 하라고 따질 사람이 많지만, 시골에서는 법에서 정한 제한 따위 다 무시하는 경향이 많아서 그렇다. 또한 마녀라고해서 여자만 잡은 것이 아니었다. 기회만 되면 마녀라고 몰아갈 수 있을만한 독거 노인을 몰아서 잡았는데 그중엔 남성도 상당 했다고 한다. 물론 전체적인 비중으로 따지면 여성 희생자가 더 많지만 모스크바의 경우엔 희생자의 70퍼센트 이상이 남성이었다.
여담이지만, 영국 뇌르틀링겐에서는 약 56번에 걸친 혹독한 고문에도 끝까지 마녀가 아니라고 뜻을 굽히지 않아서 결국엔 풀려났다는 강철의 여인이 있었다고 한다.
게임, 영화, 소설, 만화, 애니메이션 캐릭터 중 마녀사냥으로 희생당하는 사람은 대표적으로 악마성 시리즈의 리사 부인이 있다. 이 주제의 자세한 사항은 옆의 인물로 들어가 두번째 주석을 참고할 것. 더불어 이 자체를 주제로 삼은 마녀의 속죄라는 에로게가 존재.
위에서 잠시 언급했지만, 이 마녀사냥의 끔찍한 경험 때문에 현대의 유럽 지역에서는 '작은 사회'에 대해 극도로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다. 마녀사냥을 지속시키고 그 피해를 늘린 것에는 작은 사회가 가지고 있는 폐쇄성 및 자기 합리화가 매우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선 해당 항목을 참조하기 바란다.

[참조]엔하위키
[락지 기획팀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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