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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성술 2장 - "점술과 점성술"
AD 樂지운영자  
초자연적인 힘이나 존재에 대한 믿음·지식·관행을 포함한 광범위한 이론과 실천의 체계.

 
♣개요
점술은 여러 가지 수단을 통해 미래를 예언하려는 기술 또는 작업을 일컫는데, 신을 인정하는 사회에서는 신의 뜻을, 그렇지 않은 사회에서는 운명을 예측하고자 했다. 점술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태양·달·행성의 움직임을 통해 미래를 예측하고자 하는 점성술이다.
 
♣성격과 의미
점성술은 천체의 운행이 지상의 4대 물질 요소인 불·공기·물·흙의 생성과 소멸에 특별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상에 기초하고 있다. 점성술은 본래 기계론적 우주를 상징하고 있기 때문에 신의 뜻은 논외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이런 사고는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 측으로부터 공격을 받았다. 그래서 점성술은 지역에 따라서 신의 개입을 인정하는 측과 인정하지 않는 측으로 나뉘고 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는 별의 운행이 신의 뜻을 나타낸다고 생각하여 별의 징조를 살피고, 그것을 해석하여 질병, 재난, 군사적인 움직임 등의 문제에 관해서 왕에게 조언하는 제관이 있었다. 이러한 사상의 근처에는 별의 징조가 다만 하나의 지표가 될 뿐 결정론적인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깔려 있다. 점성술의 본래 목적은 사람의 출생시 또는 임신시에 혹성의 위치 및 12궁도의 위치를 살펴봄으로써 그의 인생 항로에 대해서 알려주는 것이었다. 이외에 일식 또는 월식 등 특별한 천체현상을 통해 국가나 집단의 운세를 살피는 경우도 있다.
 
♣역사적인 발달과정
하늘의 징조를 살피는 메소포타미아의 전통은 나중에 엄격한 의미에서 점성술(12궁도를 살피는 것)과 합해져 한 분파를 형성하게 되었는데, 이들은 주로 해·달·기후·금성의 상태를 보고 예언을 했다. BC 18세기에 시작된 메소포타미아의 전통은 이집트에 영향을 미쳐 BC 5세기경부터 이집트에서 시작되었고, 인도에서도 BC 5세기경에 점성술 책인 〈에누마 아누 엔릴 Enuma Anu Enlil〉이 전해지면서 시작되었다. 그리스에서도 메소포타미아의 영향으로 BC 2세기경에 시작되었는데, 점성술의 사상적 토대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천동설과, 천체의 운행이 지상의 물질에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이었다.
헬레니즘 시대(BC 3~AD 3세기)의 사람들 가운데는 대우주와 소우주 사이의 연관성을 탐구하는 이들이 있었다. 이들은 태양의 황도를 12궁으로 구분하고 각 부분에 12개의 서로 다른 별자리를 할당했다. 각 궁은 태양계 혹성의 집이 되며, 물질의 4요소와 각각 관련을 맺고 있다. 그리하여 이들은 12궁의 각 부분에 해당하는 혹성의 움직임과 물질의 각 요소 등이 사람의 성격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여 이것을 토대로 점을 쳤다. 점성가들은 어느 주어진 시점에서 각 별자리의 위치와 12행성의 경도 및 위도를 측정하여 천궁도(天宮圖)를 만들고, 이것을 별자리와 행성의 관계, 그것과 물질의 4요소와의 관계, 지상의 각 사건과의 관계 등을 참조해서 해독한다. 여기에서 자연히 갖가지로 달리 해석할 가능성이 생겨나므로 점성가들은 고객의 사회적·민족적·경제적 배경을 감안하고,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제대로 해독하려고 노력한다. 이것이 BC 100년경부터 내려오고 있는 점성술이다. 그러나 많은 점성가들은 좀더 정확하게 점을 치기 위해서 여러 가지 방법을 고안하여 병행하고 있다.
그리스의 점성술이 인도에 전파된 것은 2, 3세기이다. 그런데 기법만 전달되었을 뿐 철학적 토대는 전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인도인들은 점성술을 인도 사회에 맞게 변화시켰다. 인도인들은 복잡한 헬레니즘 점성술 체계를 보다 더 정교하게 발전시켰다. 한편 페르시아에서 점성술은 사산 제국이 건설될 무렵(226)에 인도와 그리스의 영향으로 시작되었다. 이들은 점성술을 보다 긴 안목에서 관찰함으로써 발전시켰는데, 조로아스터교의 천년왕국시대 사상과 결합시켜 역사를 12개의 1,000년 시대로 구분했다.
이슬람 사회에서 점성술은 8, 9세기경 헬레니즘 사회, 사산 왕조 페르시아, 인도의 영향으로 시작되었다. 대표적인 점성가인 아부 마샤르는 천체가 지상의 물질에 영향을 미친다는 신(新)플라톤주의와 페르시아의 1,000년 시대설을 받아들여 점성술이 아랍 세계에서 일시적으로 풍미하게 되었다. 그러나 인간사에서 신의 개입을 부정했기 때문에 이슬람교 신학자의 공격을 받았으며 13세기 몽골의 침입 후 쇠퇴하고 말았다.
비잔틴 세계에서 5, 6세기에 이교사상이 급증하자 많은 점성가가 배출되었고, 8, 9세기 시리아어·아랍어 서적이 번역됨에 따라 점성술은 부흥하게 되었다. 14세기에 J. 아브라미우스와 그 제자들이 그리스 점성술 논문들을 쉽게 개정하여 재흥을 가져왔다. 여기에서도 점성술은 교회와 갈등으로 단속적으로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서유럽에서 점성술은 라틴 문명권보다는 그리스 문명권의 영향이 더 컸다. 가장 흥성했던 시대는 15, 16세기이며, 그후 17세기에 천동설이 천문학에 의해 부정되자 이제 점성술은 과학으로서 신뢰를 얻지 못하게 되었다. 오늘날 점성술이 더이상 지식인들로부터 호응을 받지 못하고 있기는 하지만, 최근 서구 사회에서는 점성술이 일반인들에게 흥미를 끌고 있다. 그것은 생일이 어느 별자리에 속하는가 하는 것을 찾아봄으로써 그의 운세를 점치려는 의도에서이다. 생일과 별자리의 관계를 살펴보면, 수양자리(3. 21~4. 19)·황소자리(4. 20~5. 20)·쌍둥이자리(5. 21~6. 21)·게자리(6. 22~7. 22)·사자자리(7. 23~8. 22)·처녀자리(8. 23~9. 22)·저울자리(9. 23~10. 23)·전갈자리(10. 24~11. 21)·사수자리(11. 22~12. 21)·염소자리(12. 22~1. 19)·물병자리(1. 20~2. 18)·물고기자리(2. 19~3. 20) 등이다. 그러나 가상적인 황도의 분할과 인간의 운명이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하는 회의가 대두됨에 따라 점성술은 이제 단지 현대인들의 정신적 공백을 메우려는 시도로만 여겨지고 있다.

[참조]한국 위키백과
[락지 기획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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