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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 1장 - "십자군(十字軍/crusade)"
AD 樂지운영자  
유럽인들이 이슬람교도들을 상대로 벌인 일련의 군사 원정(1095~1270).
큰 물줄기로 8차례였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더 많았는데 목적은 예루살렘과 그리스도의 성묘(聖墓)를 이슬람교도의 지배로부터 탈환하는 것이었다.

11세기에 봉건 유럽에서는 상업과 종교가 광범위하게 부흥했고 예루살렘과 동방의 성지 순례가 점차 유행하게 되었다. 또한 콘스탄티노플을 수도로 하는 비잔틴 제국은 점점 강대해지는 셀주크 투르크의 위협을 받고 있었다. 비잔틴 황제 알렉시우스 1세 콤네누스는 유럽, 특히 로마 교황에게 도움을 청했다. 1095년 클레르몽 공의회에서 교황 우르바누스 2세는 알렉시우스를 돕고 그리스도의 성묘를 탈환하기 위해 그리스도교도의 군대를 소집했다. 이에 따라 베르망두아의 위그, 보에몽, 생질의 레몽, 플랑드르의 로베르 같은 기사들이 군대를 일으켰다. 보잘것없는 전사·모험가·광신자 들의 소규모 비조직적인 부대도 형성되었다. 그후 2년이 넘도록 그들은 콘스탄티노플과 그 주변에 모여 오늘날의 터키 지역을 가로질러 남쪽으로 진군할 준비를 했다. 1098년 그들은 오랜 포위 공격 끝에 난공불락의 요새인 안티오크를 점령했다. 1099년 7월 15일에는 예루살렘을 함락하고 그곳에 살던 이슬람교도와 유대인을 학살했다. 그후 몇 십 년 간 십자군은 팔레스타인 해안을 따라 가느다랗게 뻗어 있는 지역을 장악하고 예루살렘 왕국, 트리폴리 백작령, 안티오크 공국, 에데사 백작령 등 소위 십자군 국가를 세웠으며, 그곳에 유럽인 통치자를 두었다. 그들은 해안과 내륙의 변경을 따라 성을 세웠다.
 
 1144년 십자군은 모술에 강력한 이슬람 국가를 세운 셀주크 투르크의 통치자 장기에게 에데사를 빼앗겼다. 에데사가 함락되었다는 소식이 유럽에 전해지자 교황 유게니우스 3세는 제2차 십자군을 소집했다. 이 제2차 십자군 원정 동안 독일 황제 콘라트 3세와 프랑스 왕 루이 7세가 이끄는 군대가 1148년 봄 예루살렘에서 연합해 5만 명의 병력으로 다마스쿠스 북쪽을 공격했다. 그들은 장기의 후계자 누레딘이 이끄는 군대에게 밀려 결국 후퇴했으며, 제2차 십자군 원정은 치욕스런 패배로 끝났다. 누레딘은 1154년 다마스쿠스를 점령했고, 살라딘이 1169년 이집트 전역을 장악하고 1183년 알레포를 점령함으로써 십자군 국가들을 완전히 포위했다. 1187년 살라딘은 갈릴리 바다 근처의 하틴 전투에서 예루살렘 주둔 십자군을 거의 무찔렀으며 10월 2일에는 예루살렘과 다른 십자군 요새를 대부분 점령했다.
 
예루살렘 함락에 충격을 받은 교황 그레고리우스 8세는 제3차 십자군을 소집했다. 그때까지 모인 중 규모가 가장 큰 십자군 부대가 1189년 5월 붉은수염왕 프리드리히 황제의 지휘로 출발했다. 그러나 1년 후 프리드리히가 물에 빠져 죽는 바람에 살라딘과 프리드리히의 대결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1191년 영국의 사자심왕 리처드 1세는 비잔틴 속주 키프로스를 점령한 뒤, 프랑스 존엄왕 필리프 2세와 연합해 본토의 아크레를 공격했다. 7월에 그들은 아크레를 함락하고 그곳 주민들을 학살했다. 예루살렘에 도착하는 데 실패한 후, 1192년 리처드 1세는 살라딘과 5년 동안 유럽인의 성지순례를 허용한다는 내용의 강화조약을 맺었다. 1198년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가 이집트를 공격하기 위해 소집한 제4차 십자군 원정은 예기치 못한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십자군은 베네치아에서 들여온 배와 장비의 대금을 지불할 수 없게 되자, 베네치아인들을 도와 헝가리의 자라 시를 점령한 다음 콘스탄티노플을 공격했다. 1204년 4월 13일 그들은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고 도시를 약탈했다. 십자군과 베네치아인들은 콘스탄티노플 라틴 제국을 세웠는데, 이 제국은 60년 이상 존속했다.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는 십자군의 이러한 행동을 비난했지만, 제4차 십자군은 비잔틴 교회와 라틴 교회의 동맹 가능성을 완전히 파괴해버렸으며, 비잔틴 제국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혔다.
 
그후 유럽에서는 십자군 운동의 열기가 되살아나 1212년 비극적인 소년 십자군이 생겨났는데, 이때 참여한 수천 명의 어린이들이 실종되거나 노예로 팔려갔다. 3년 후 인노켄티우스 3세는 다시 한번 이슬람교도들을 공격할 것을 호소했다. 그결과 주로 프랑스와 독일 사람들로 구성된 제5차 십자군은 1219년 나일 강 근처의 담미에타를 점령했다. 그러나 홍수를 만나 카이로로 진격하지 못하고 있던 십자군은 8년간의 휴전에 합의하고 어물쩡하게 원정을 끝마쳤다. 이것은 교황이 직접 조직한 마지막 십자군이었다. 제6차 십자군 때 출정을 지체했다는 이유로 파문당한 적이 있는 독일 황제 프리드리히 2세는 1229년에 10년간 예루살렘을 유럽인들에게 반환한다는 협정을 얻어냈다. 1244년 몽골족의 진출로 서쪽으로 밀려온 크바레즈미 투르크족이 이집트인의 도움을 받아 예루살렘을 약탈했다. 1248년 프랑스 왕 루이 9세는 다시 원정에 나섰다. 그러나 이 제7차 십자군도 제5차 십자군처럼 이집트에서 패배했다. 루이는 22년 뒤 마지막 십자군인 제8차 십자군을 이끌고 출전했으나, 튀니지에 상륙한 직후 대부분의 군대와 함께 병에 걸려 죽었다. 그후로 15세기에 이르기까지 불행한 원정활동이 계속되었지만 십자군 시대는 끝나버렸다. 이집트의 맘루크(노예군인)가 몽골족을 시리아에서 몰아낸 후 맘루크족 술탄 바이바르스는 십자군을 가혹하게 대했기 때문에 그들 중 많은 사람이 몽골족과 동맹을 맺었다. 1268년 맘루크는 안티오크를 점령하고 모든 주민을 학살했다. 1289년 그들은 트리폴리를 점령했고, 1291년에는 본토에 있는 라틴인들의 최후 전초기지인 아크레마저 점령했다.

[참조]한국 브리태니커 온라인
[락지 기획팀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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