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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검 7장 - 크로스보우 (Crossbow) - ①
AD 樂지운영자  
국내에서는 석궁(石弓)이라는 표현이 흔히 사용되지만, 이 석궁이라는 말은 좀 어폐가 있다고 생각한다. 석궁(石弓)이란 말만 풀어놓고 보면 화살을 쏘는 크로스보우가 아니라 돌맹이를 쏘는 탄궁 개념의 스톤보우(stonebow)의 번역 용어로 보이는데, 그 형태가 비슷하다보니 헷깔린 표현이 중역서를 거쳐 들어오면서 국어에서 굳어진게 아닌가 보인다.

오역인 것은 아마도 맞는듯 한데, 석궁이 일본 중역서를 통해 굳어진 것인지 중국을 거친 것인지 여부는 확실하지 않다. 이를 추적하기 위한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
어쨌든, 이 무기는 원래 우리말로는 쇠뇌, 한자로는 노(弩)라고 부른다. 정확하게 쓰려면 그쪽이 낫고, 굳이 크로스보우를 풀어쓰자면 석궁보다는 십자궁이 더 적절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일본에서는 크로스보우를 두고 보우건(bowgun)이라는 표현을 쓴다. 하지만 이는 일본식의 틀린 표현이고 서구권에서는 잘 쓰지 않는다. 물론 쓰는 경우는 찾아보면 간혹 있고 보우건이라고 하면 한템포 느리게 알아는 듣지만, 서구에서는 잘 쓰지는 않는 표현인 것은 명백하다. 일본의 크로스보우 용품 수입업체 중에 주식회사 보우건이라고 상표등록한 회사가 있어서인지, 일본 언론매체에서는 보우건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십자궁의 역사
동양에서는 BC 2000년에서 1200년 사이에 등장했다는 엄청난 설이 있는데, 일단 유물적 근거로 따져봤을때 춘추전국시대 초나라나 노나라의 유적지에서 BC 6~5세기 경의 것으로 보이는 노(弩)의 방아쇠나 그 화살이 발견되었다. 연발로 발사하는 연노는 삼국지에서도 언급됐으며, BC 4세기 경의 유물이 발견된 바가 있다. BC 4~3세기 묵자 계열에서 남긴 기록에서 노가 등장하는데, 그 기록에 따르면 BC 6~5세기에 대형의 노 내지는 발리스타가 사용되었다고 하며, BC 6세기 경 쓰여진 손자병법에서도 노의 운용법에 대한 항목이 존재한다. 적어도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노가 널리 사용되었다는 말이 된다.
 

서양에서는 BC 5세기에 그리스에서 가스트라페테스라는 무기가 등장했을 것으로 보인다. 사실 가스트라페테스를 우리가 말하는 개인용 십자궁으로 봐야 할지는 미묘하다.
기존 학설에서 가스트라페테스는 BC 399년 시라쿠사의 지배자 디오니쿠스 1세가 발명한 것이라는 설이 대세였는데, 최근 연구로는 그건 가스트라페테스가 아니라 카타펠리콘이라는 화살을 날리는 캐터펄트 구조의 공성무기를 말하는 것이라고 한다. AD 1세기의 그리스 과학자인 헤론의 책에서 가스트라페테스가 언급되는데, 그 책은 BC 3세기의 발명가 크테시비우스의 것을 발췌한 부분이 많으며 가스트라페테스 역시 그러하다. 헤론은 카타펠리콘이 그보다 이전에 있던 무기인 가스트라페테스를 참고해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또 다른 문헌을 살피면, BC 2세기 경의 인물로 추정되는 그리스 저자 비톤은 피타고라스 학파의 조피로스라는 기술자가 가스트라페테스의 개량형을 만들어서 BC 420~BC 401년 사이에 큐메와 밀레토스 공성전에 투입했다는 말이 있다. 고로 가스트라페테스는 최소한 BC 421년 이전에 등장한 셈이 된다.
가스트라페테스는 벨리보우라고 번역해야 할까, 장전 시에 개머리판 쪽에 해당하는 부위를 배에 갖다대고 온몸의 체중을 실어 세로로 꾹 누르면 슬라이드식으로 시위를 밀어올려서 장전하는 식으로 보인다. 활몸은 컴퍼짓 보우로 만들어지고, 사이즈는 개인용으로 쓸 수 있으나 꽤 큰 편에 속해서 준 공성용이었다고.
가스트라페테스는 개인용 치곤 사이즈가 제법 큰 것으로 추정되고 공성용에 가까웠다고 보이므로,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손에 들고다니면서 쏘는 십자궁에 포함시킬까말까 고민된다. 진짜 핸드헬드 개인용 십자궁으로 확신할 수 있는 것은 로마 시대의 마누발리스타부터다. AD 1세기 경 헤론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며, 금속 부품을 사용했다는 표현을 보면 판스프링을 이용해서 트리거를 작동했을지도 모른다.
조각을 통해서 살펴볼때 마누발리스타는 두가지 타입이 있는데, 하나는 가볍고 약한 사냥용이고, 다른 하나는 좀 더 크고 강력한 군용이다. 즉 로마 시대부터 이미 십자궁에는 체급이라는게 있었다는 말이다. 둘 다 활은 목궁으로 보이는 리커브 보우 구조이며, 스톡은 짧고 버트쪽에 손잡이가 붙어있다. 쿼럴을 올려두는 그루브가 존재한다. 아마도 시위를 거는 락 부분은 롤러 너트 형태일듯 하다.
로마 몰락 이래 십자궁은 비중이 퍽 줄어들어서 중세 초기에는 한동안 십자궁이 상실됐다는 말도 있으나, 기록상에서 발리스타 궁수를 언급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 발리스타가 십자궁이었을 것이다. 로마 스타일의 것이 AD 9세기까지 큰 발전 없이 유지됐을 것으로 보인다. 10세기부터 유럽에서 십자궁이 다시 슬슬 자주 보이기 시작하는데, 스톡 길이는 짧고, 활몸(프로드)은 스톡 길이 정도에, 롤러 너트와 드롭 핀의 두가지 락 구조가 모두 등장한다. 아직 장전시에 사용하는 밟는 등자는 등장하지 않았으며, 그냥 프로드를 발로 밟으면서 시위를 손으로 끌어당겨 장전했을 것으로 보인다. 아직 프로드는 그냥 나무이거나, 나무에 힘줄을 덧대어서 강화하는 정도였다.
 

유럽의 십자궁이 크게 변화하는 것은 12세기 경부터인데, 1차 십자군 원정을 통해서 중동의 복합궁 구조를 배워왔기 때문이다. 13세기 초부터 민관의 여러 기록에서 "뿔로 만들어진 십자궁" 같은 표현이 많이 등장한다. 동시에 그림 등에서 스톡은 길어지고(하지만 락이 걸리는 위치는 별로 후퇴하지 않기 때문에 드로우 렝스는 이전과 별 차이 없었다) 프로드는 짧아지며, 밟을수 있는 등자가 스톡 전방에 부착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중국에서 노에 등자가 부착된 것은 11세기경이라고 한다.) 사수는 허리띠에 훅을 걸어서 시위를 당겼다. 우리가 중세 십자궁이라고 생각하는 그것이 바로 이때부터다.
"한발짜리 십자궁과 두발짜리 십자궁"이라는 표현도 찾아볼 수 있는데, 이는 장전시에 등자를 한쪽 발로만 밟느냐, 양쪽 발을 모두 넣어 밟느냐를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쪽 발로만 밟는 것은 야전용으로 쓰는 작고 가벼운 쪽이고, 두발로 밟는 것은 그만큼 장전에 큰 힘이 드는 공성/수성용이다. 둘은 사용하는 볼트의 크기가 구분되었기 때문에, 분명히 크고 작은 크기 차이가 있었을 것이다.
뿐만아니라 십자궁은 중세 후기/르네상스 시대에도 풀, 하프, 쿼터, 수렵/훈련용의 체급 구분이 존재했다. 풀 보우는 강하게는 2000 파운드의 위력을 내어 450 야드까지 화살을 날리지만, 10kg 대의 무게로 너무 무거워서 수성전에나 주로 쓴 것이다. 하프 보우는 1천파운드 급에 350 야드 정도의 사거리, 5kg 대의 무게에 강력한 크레인퀸을 이용해서 장전했다. 쿼터는 보병이나 기병이 사용할만한 3~4kg 정도의 더 가벼워진 것으로 250~300 야드 정도의 사거리였고 흔히 레버식으로 장전한다. 독일에서 슈내퍼라고 부르는 작은 동물 수렵용/훈련용 십자궁은 제일 작은 것으로 토끼 같은 작은 동물을 사냥하거나 사격 훈련용인데, 종종 도자기 구슬탄을 발사하는 스톤보우에 가까운 것도 있었다.

[참고]
en.wikipedia.org
science.howstuffworks.com
science.howstuffworks.com
forum.guns.ru
www.arrow.or.kr
The Crossbow by Sir Ralph Payne-Gallwey
Iolo's First Book of Crossbows by David R. Wat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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