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옛날, 일월산 아랫마을에 살던 황씨 성을 가진 처녀는 동네 총각과 혼인을 하게 되었다. 워낙 아름다운 규수라 두 젊은이가 서로 탐내어 다투었었는데, 그 중 한 총각이 행운을 차지하게 되었던 것이다.
신혼 첫날밤이었다. 원앙금침에 들기 전, 뒷간에 갔다가 신방(新房) 문 앞에 선 신랑은 기겁을 하고 놀랐다. 신방 문 창호지에 칼날 그림자가 얼씬거린 것이다. 그 그림자가 분명 연적(戀敵- 다른 총각)의 것이라 여긴 신랑은 그 길로 아무 말없이 달아나버렸다. 칼날 그림자란 실은 문 앞에 있던 대마무잎의 그림자에 대한 착각이었지만, 신랑은 그것을 알 길이 없었다. 그 길로 영영 달아나버린 신랑을 기다리던 신부는 조바심을 내며 신랑을 기다리다가 몇 날, 몇 밤을 새웠는지 모른다. 침식을 전폐하고 오직 기다림에 몸을 바치던 신부는 마침내 한을 품고 구천(九天)으로 세상을 하직했다.
그러나 그의 시신은 삭을 줄을 몰랐다. 살아 생전 꽂꽂했던 몸가짐도, 앉음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돌부처인 양 시신은 언제나 신방을 지키는 듯 보였다. 한편, 도망간 신랑은 외지에서 다른 색시를 만나 장가를 들었다. 그리고 아이까지 낳았으나 아이는 낳는 대로 이내 죽곤 하는 것이었다. 점장이에게 알아보았더니 바로 황씨 규수의 원한 맺힌 원혼(寃魂)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괴로움에 빠진 신랑은 그를 일월 산정에 묻어주고, 그리고 그를 섬기도록 하여 보라는 어떤 승려의 가르침을 받기도 했다.
신랑은 전날의 잘못을 뉘우치고, 지금의 부인당 자리에 시신을 옮기고 작으나마 사당(祠堂)을 지어바쳤다. 그 때야 시신은 홀연히 삭아 없어지더라는 것이다.
일월산은 조지훈의 고향 근처에 있는 산이다. 따라서 이 설화와 그의 [석문(石門)]이라는 시와 관련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석문}은 1993년 11월 제2차 대학수학능력시험에 출제되었다. 한편 서정주의 [신부]라는 시도 이와 같은 소재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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