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문화사를 살펴보면, 대체로 수렵·목축 등으로 유동 생활을 하는 민족에 비해 정착생활을 하는 농경민족에게서 보다 풍부한 가면의 전통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기술수준이 낮고 자연조건의 지배를 크게 받은 시대일수록 주술적인 농경의례가 성행했는데, 지금도 그 전통은 도처에서 발견된다. 농경의례의 양식은 다양하지만, 풍년을 가져오는 신격(神格)과 정령이 가면의 형태를 빌어 출현하는 경우가 많았다. 앞에서 샤먼의 가면으로 예를 들었던 카치나 가면도 이에 포함된다.
보르네오의 가얀족은 볍씨를 뿌릴 때 벼의 영을 상징하는 가면을 쓰고 춤을 추어 그 영이 자신들의 땅에 머물도록 하며,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에서도 수확제사에 정령의 가면을 사용한다. 우리나라의 풍년제에도 다양한 종류의 가면이 등장하는데, 서민의 생활감정을 그대로 표현해 소박하면서도 신비스런 느낌을 갖게 한다.
또한 농경민족에게서는 농작물의 영이 일단 죽은 후 다시 부활해 결실을 가져온다는 내용의 신화가 많이 발견되는데, 이는 대지의 풍년과 죽음의 관념이 강하게 결합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풍년의식에도 사령이나 조령의 가면이 등장하는 예가 많으며, 이밖에 술의 신 디오니소스의 가면도 풍년을 의미하는 가면으로 쓰인다. 한편, 북아메리카의 푸에블로 인디언들의 풍년의식에는 오늘날 할로윈이나 사육제 등의 축제에 쓰이는 것처럼 을씨년스럽고도 우스꽝스러운 가면을 쓴 익살꾼들이 등장했는데, 이는 악의없는 장난으로 받아들여져 도에 지나친 것도 허용되었다고 한다.
[참조]한국 브리태니커 온라인
[락지 기획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