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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 2장 - "키드(William Kid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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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칭은 Captain Kidd.
1645경 스코틀랜드 렌프루 그린녹~1701. 5. 23 런던.
17세기 영국의 사략선(전시에 적국상선을 나포할 수 있는 허가를 받은 민간무장선) 선장이며 반(半)전설적인 해적.

영국문학작품에서 가장 다채로운 무법자의 하나로 묘사되어왔다. 수세기 동안 일확천금을 노리는 사람들은 그가 묻어두었다는 보물을 찾아 나섰지만 모두 허사였다. 초기 행적은 분명하지 않으나 청년시절에 배를 타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689년 이후 서인도제도와 북아메리카 연안에서 프랑스 상선을 나포할 수 있도록 영국으로부터 합법적으로 인정을 받은 사략선을 운항했으며 1년 뒤인 1690년에는 뉴욕에서 선장이자 선주로 자리를 잡았다. 그곳에서 재산을 모았으며 해안으로 침투한 적의 사략선을 물리치기 위해 뉴욕과 매사추세츠에 여러 차례 파견되기도 했다. 1695년 런던에서 영국의 왕으로부터 홍해와 인도양 등지에서 동인도회사의 배를 방해하는 해적들을 체포하라는 임무를 맡았다.
 
1696년 2월 27일 자신의 배 '어드밴처 갤리호'를 타고 뎃퍼드 항을 출발해 플리머스를 거쳐 선원을 충원하기 위해 7월 4일 뉴욕에 도착했다. 1697년 2월경 해적들이 자주 출몰하는 지역을 피해 동부 아프리카 연안의 코모로 섬에 기항했다. 그때까지 현상금이 붙은 배를 잡지 못했던 키드가 해적질을 하기로 결심한 것은 코모로 섬에 도착한 뒤부터인 것으로 보인다. 1697년 8월 그는 예멘에서 모카 커피를 싣고 가는 선박을 공격했으나 실패했으며, 그후 몇몇 작은 배들을 포획했다. 2개월 후에는 네덜란드 선박을 공격하자는 선원들의 주장을 거부해 선원들을 반란 직전의 분위기로 몰고갔으며 격렬한 싸움 끝에 키드는 포수 윌리엄 무어를 죽였다. 1698년 1월 가장 값나가는 노획물 아르메니아 선박 ' 퀘다 머천트호'를 손에 넣은 키드는 항해에는 부적합한 '어드밴처 갤리호'를 폐기처분했다. 서인도제도의 앵귈라에 도착했을 때(1699. 4) 자신이 해적으로 알려져 비난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히스파니올라 섬에서 '퀘다 머천트호'를 떠났다. '퀘다 머천트호'는 이곳에서 폐기되었을 가능성이 있지만 어쨌든 이 배는 이후 배안에 있던 노획물들과 함께 영영 사라졌다. 그리고 그는 새로 구입한 선박 '안토니오호'를 타고 뉴욕으로 건너가 당시 뉴욕 식민지 총독인 벨러먼트 백작에게 자신의 결백함을 납득시키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벨러먼트는 그를 영국으로 압송해 재판을 받게 했으며, 그는 무어를 살해한 혐의와 5차례의 해적행위에 대해 유죄를 선고받았다(1701. 5. 8~9). 이중 2차례의 해적행위에 대한 중요한 증거는 재판과정에서 공개되지 않았으며 일부 관계자들은 후일 이들 증거가 유죄 판결을 내릴 정도로 충분한 것이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키드는 교수형에 처해졌고 그의 보물 중 일부는 롱아일랜드 근처 가디너스 섬에서 발견되었다. 그의 재산에서 얻어진 수익금과 '안토니오호'에 있던 재물들은 자선사업에 쓰였다. 그후로 '키드 선장'하면 소설에서 허세를 부리는 낭만적인 해적을 떠올릴 정도가 되었다. 키드가 보물을 숨겨놓은 곳을 소재로 한 여러 소설 중 에드거 앨런 포의 〈황금벌레 The Gold Bug〉가 대표적이다.

[참조]한국 브리태니커 온라인
[락지 기획팀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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