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5 웨일스 글러모건 랜림니~1688. 8. 25 자메이카 로런스필드(?).
웨일스 태생의 해적.
17세기 후반에 스페인의 카리브 해 식민지를 약탈한 해적들 중에서 가장 유명하다.
영국 정부의 비공식적인 지원을 받아 활약하면서 서인도 제도에서 스페인의 권위를 잠식했다.
모건의 출신과 초기 생애는 명확히 알 수 없으나 아마도 1655년 스페인으로부터 자메이카를 빼앗아 영국의 식민지로 바꾼 탐험대에 속해 있었던 것 같다. 1662년 쿠바 원정에도 참가한 것 같고, 제2차 영국-네덜란드 전쟁(1665~67)이 벌어지는 동안 카리브 해의 네덜란드 식민지를 약탈한 해적대의 부사령관이었다. 1668년 해적대의 대장으로 선출된 그는 신속하게 쿠바의 푸에르토프린시페(지금의 카마궤이)를 점령했으며 기상천외의 과감한 작전으로 파나마 해협의 철벽 같은 요새 포르토벨로 시로 쳐들어가 약탈했다. 1669년에는 베네수엘라 해안에 있는 마라카이보 호 근처의 부유한 스페인 정착촌을 기습했다. 마침내 1670년 8월 스페인령 아메리카 제국의 주요도시인 파나마를 36척의 전함과 2,000여 명의 해적을 이끌고 노획하기 시작했다. 파나마 해협을 가로질러 대규모 스페인 군을 무찌르고(1671. 1. 18) 파나마 시로 입성했으며 그곳은 모건의 부하들이 약탈하는 동안 완전히 잿더미가 되었다. 모건은 돌아오는 길에 부하들을 버리고 약탈물을 챙겨 잠적했다. 모건의 파나마 습격은 영국과 스페인 사이의 평화협정이 체결된 뒤에 발생했기 때문에 그는 체포되어 런던으로 압송되었다. 그러나 영국과 스페인과의 관계는 급격히 악화되어 1674년 영국 왕 찰스 2세는 그에게 기사작위를 주고 다시 자메이카 부총독으로 파견했다. 그곳에서 죽을 때까지 농장경영주로서 존경받으며 부유하게 살았다. 선원 중 1명이 쓴 모건의 탐험에 관한 과장된 이야기를 통해 그는 피에 굶주린 해적이라는 평판을 얻었다.
[참조]한국 브리태니커 온라인
[락지 기획팀 연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