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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 3장 - "튜튼 기사단(Teutonic Or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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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기사단(Teutonic Knights)이라고도 함.
공식 명칭은 House of the Hospitalers of Saint Mary of the Teutons in Jerusalem.
중세 때 프로이센을 정복해 강력한 국가로 변모시킨 독일 십자군 단체.

1190년경 팔레스타인의 아크레에서 독일의 한 자선 시설과 연계된 자선 단체로서 창립된 튜튼 기사단은 1198년부터 군사적 성격을 띠게 되었고 기사단장인 헤르만 폰 살차(1210~39 재임)의 지휘 아래 1211년 활동의 주무대를 중동에서 동유럽으로 옮겼다. 그곳에서 이들은 헝가리 왕 엔드레 2세를 도와, 침입한 이교도인 쿠만족과 싸웠다. 그뒤 1225년 엔드레 왕에게 쫓겨났다가 마조비아의 콘라트로부터 프로이센을 정복해 개종시켜달라는 요청을 받은 기사단원들은 비수아 강 북쪽으로 이동해 토른(토루인)에 거점을 마련했다. 1233년 그 지역 담당 단장인 헤르만 발크는 주로 중부 독일에서 자원해온 평신도들로 구성된 군대를 이끌고 프로이센 정복을 개시했다. 그 뒤 50년에 걸쳐 비수아 강 하류에서 네만(니멘) 강 하류에 이르는 지역을 점령하고 대부분의 프로이센 토착민들을 몰살한 뒤(특히 반란이 심했던 1261~83년 사이에 토착민들이 많이 몰상당했음) 튜튼 기사단은 프로이센에 대한 지배권을 확립했다.
 
기사단은 정복지의 1/3에 달하는 지역을 교회에 봉납하고 그곳에 새로 생긴 도시에 상당한 자치권을 허용하면서도 프로이센의 지배세력으로 등장해 지역발전을 위한 여러 가지 정책을 실시했다. 여러 채의 성을 쌓아 기사들의 거주지와 군사적·행정적 중심지로 삼았으며 기사단의 봉신이 된 독일과 폴란드의 귀족들에게는 봉토를 충분히 나누어줌으로써 독일 농민들을 불러모아 인구가 격감한 지역에 정착시키도록 했다. 1263년 교황이 청빈의 서약에 묶여 있는 기사들에게 무역활동에 직접 참여할 수 있도록 허용한 뒤부터 이윤이 많이 남는 프로이센의 곡물 무역을 독점했다.
1309년 기사단장이 마리엔부르크에 항구적인 거처를 정했을 때 튜튼 기사단은 이미 강력한 봉건 국가를 세워 프로이센뿐만 아니라 1237년 튜튼 기사단의 리보니아 지부로서 활동을 시작한 리보니아 기사단이 관할하는 발트 해 연안국가(쿠를란트·리보니아, 1346년 이후 에스토니아)와, 단치히(지금의 그다인스크) 시를 포함한 동포메른 지방 및 독일의 중남부지역도 지배했다. 튜튼 기사단은 15세기에 들어와서도 비록 성공하지는 못했으나 리투아니아를 정복해 개종시키려 했고, 한자 동맹에 속한 상업 도시들을 보호하기 위해 활발한 활동을 벌였으며, 1402년에는 서포메른의 노이마르크를 매수하고 그 전인 1398년에는 프로이센과 기사단의 리보니아 지부를 갈라놓고 있던 리투아니아의 영토 사모기티아를 점령하는 등 계속 위세를 떨쳤다
 
그러나 발트 해로 진출하려는 시도가 좌절된 폴란드와, 1387년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뒤에도 계속해서 기사단으로부터 영토에 대한 위협을 받고 있던 리투아니아는 기사단의 영토가 확장되고 세력이 커가는 데 적의를 품게 되었다. 결국 1408년 사모기티아에서 기사단의 통치에 반기를 든 반란이 일어나자 폴란드와 리투아니아는 힘을 합쳐 그룬발트 전투(1410)에서 기사단에게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그결과 토루인 조약(1411)이 맺어져 사모기티아와 도브리진 지방을 포기하는 것으로 결말이 났지만 기사단의 군사력은 큰 손상을 입었고 뒤이어 권위와 재정 형편도 급속히 약화되기 시작했다. 또한 폴란드가 전쟁을 계속 벌이자 더이상 버티기 어려워졌고 봉신들이 30년전쟁(1454~66) 때 폴란드에 가담하는 사태가 벌어지자 기사단은 마침내 굴복했다. 1466년 기사단은 제2차 토루인 조약을 맺고 포메른과 비수아 강 양안 및 바르미아(에름란트)의 주교 관할구를 폴란드에 넘겨주었다. 프로이센의 나머지 지역은 계속 보유했으나 그 지역에서 기사단장의 지위는 폴란드 왕의 봉신으로 격하되었다. 공식적으로 독일인으로만 구성되어 있던 기사단에 폴란드인들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1525년 프로테스탄트로 개종한 기사단장 알베르트는 프로이센에서 튜튼 기사단을 해체하고 기사단의 영토를 폴란드를 종주국으로 하는 세속적인 공국으로 전환시켰다. 1526년 리보니아 지부의 지도자인 고타르트 케틀러도 기사단을 해체하고 관할 지역을 폴란드·리투아니아·스웨덴에 각각 나누어주고 자신은 폴란드 왕의 봉토로 바뀐 쿠를란트의 세속공작이 되었다. 1530년 신성 로마 제국의 제후가 된 기사단장이 통치하는 나머지 지역과 독일 중남부에 흩어져 있던 기사단 관리지는 1809년에 나폴레옹에 의해 해체되어 다른 공국들이 나누어가졌다. 오스트리아 제국은 1834년 빈에서 튜튼 기사단을 교회의 명예 단체로 다시 창설했고 1929년 개편했다.

[참조]한국 브리태니커 온라인
[락지 기획팀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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